홍보자료

게시판뷰
[백년가게 우수사례] 서울 을지오비베어 / Since 1980
날짜 : 2019-01-31
작성자 : 관리자
조회 : 311
첨부파일 :

소시민을 행복하게 하는 장사꾼, 그거면 되지 않겠냐?”

 

개수작하지 마라우, 일 없다우.’

2016127일 이전, 을지오비베어에 인터뷰 요청을 했다면 이 말 한마디를 듣고 바로 쫓겨났을 게다. ‘숨어있는 맛집으로 오랜 기간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는 가게로 남기를 원했기에 방송이든 신문이든 어떤 매체의 인터뷰 요청도 다 거절했다는 올해 아흔 둘의 주인장.

 

그런 주인장이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한 건 아버지의 역사를 남기는 게 도리라고 생각한 2대 주인장 딸의 의지 때문이다. 1980년 문을 연 을지오비베어는 개성상인처럼 소시민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장사꾼이 되고 싶었던 황해도 실향민인 창업주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곡절 많은 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온 소시민들의 삶도 함께 녹아있는 공간이기에. 민주화열기가 한창이던 80년대 최루가스 내음을 물씬 풍기던 이들도 이곳의 생맥주 한 잔씩은 들이켰을 테니 말이다.


을지_02.png


 

냉장 숙성된 생맥주와 노가리, 하루 정해진 양만 판매

 

강효근 대표가 오비맥주와 인연을 맺은 건 1959년부터다. 외국인이 자주 드나드는 업소에서 전체적인 물품관리를 하면서 오비맥주를 취급했고, 70년대에는 경양식집을 운영하며 오비의 생맥주를 함께 팔았다. 생맥주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1980년 오비맥주가 생맥주 프랜차이즈를 시작한다는 얘기를 듣고 득달같이 달려가 2호점을 따냈다. 그런데 왜 을지로의 이 골목이었을까? 1980년이라면 지금의 노가리골목은 연말 등 인쇄업체들의 바쁜 시즌이 끝나면 한산하고 적막하기 이를 데 없는 어두운 골목이었는데 말이다.

 

딸은 가게를 물려받기 전 왜 아무것도 없는 여기에 가게를 차리셨어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25개월을 이 좁은 가게에서 먹고 자고 했어. 그땐 뭔가 잘 안돼서 절박함도 있었고, 생맥주에 대한 인식이 없으니 이 맛좋은 생맥주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심어주고도 싶었고. 여긴 인쇄골목이야. 늘 힘든 일에 치이는 사람들이니 갈증도 나고 배고픔도 있지 않겠냐? 그걸 풀어주고 싶었지.”

 

을지오비베어 오픈 당시 가격은 맥주가 380, 안주가 100원이다. 안주는 김, 땅콩, 어포류 등으로 생맥주와 함께 오비맥주가 공급했다. 그러나 이듬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맥주 공급처에서 안주까지 공급하는 행위는 위법이라는 판단이 나오면서 맥주와 안주가 각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창업주의 자부심은 냉장숙성된 생맥주에 있었다. 지금도 거대한 사이즈의 냉장고를 매장 한 켠에 유지하고 있는 이유다. 냉각기를 사용하면 공간을 1/3로 줄일 수 있지만 맥주가 차기만 하고 효모는 없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창업주는 이 맥주 맛을 상쇄하지 않을 안주가 필요했다. 그런데 둘러보니 노가리가 흔했다. ‘황해도의 김치엔 늘 동태가 들어간다. 동태를 김치에 넣어도 그렇게 맛있고, 황태는 숙취해소에 좋지 않나. 노가리는 맥주 맛을 상쇄시키지 않으니 그걸로 해야겠다.’

 

노가리가 맥주의 찰떡궁합 안주로 탄생한 배경이다. 창업주는 딱딱한 노가리를 매일 아침 7시부터 골목 앞에서 두들겨 패고 배를 갈라 편 후 가시를 빼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준비된 노가리에 평범한 고추장이 아니라 특유의 비법으로 만든 특제 소스를 곁들였다. 특제 소스라? 언뜻 보기엔 고추장인데 약간 삼삼한 맛이다. 하지만 그 재료가 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비법을 아는 이는 2013년부터 아버지에게 전수받은 딸과 창업주 단 둘 뿐이다. 고추장처럼 오래 묵히는 게 아니라 3일에서 1주일 간격으로 만들어 별도의 숙성 기간도 거친단다.

 

을지오비베어는 매일 판매하는 생맥주와 노가리의 개수가 정해져 있다. 냉장고에 보관된 맥주만 판매하니 더 많이 팔고 싶어도 팔수가 없다. 처음 가게를 오픈했을 때는 창업주가 새벽 5시 첫 차를 타고 공장으로 달려가 가장 신선한 맥주를 받아왔다. 우리나라의 주류 차량은 냉장유통이 아니기에 맥주통 자체를 공장에서 받아와야 신선한 맛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 맥주를 받아온다 해도 냉각통 자체의 온도가 떨어지는 시간이 필요하기에 일정 시간 내에는 맥주를 팔수가 없다. 지금은 새벽 6시 반 즈음에 맥주 회사 직원이 맥주통을 갖고 와 냉장고에 넣어주고 간다. ‘겨울에는 4, 여름에는 2가 최적이라는 레시피 상의 맥주 온도가 있지만 외부의 온도 변화에 따라 매일 매일 냉장숙성 온도도 바꿔주어야 한다. 기후 변화가 심해지면서 이 온도 맞추기는 더 어려워졌다. 몇 년에 걸쳐 기술을 전수받았지만 맥주 온도 조절은 지금도 2대 주인장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을지_01.png

 

유일한 한 가지 바람, ‘노가리골목의 역사가 지속되는 것!

 

신선한 맥주, 맥주 맛을 상쇄하지 않는 안주에 더해 창업주가 지켜온 원칙이 하나 더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의 영업시간이다. 대개 식사를 겸한 1차를 하고 나서 맥주 한 잔을 더하자며 2차를 가는 게 일반적인데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라니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창업 당시에는 지하철 역무원(을지로3가역은 1983년에 개통)들이 2교대 근무를 했는데 밤 근무를 한 직원들이 아침 퇴근 후 맥주 한 잔이 간절해도 마땅히 들를 곳이 없었단다. 을지오비베어가 하루의 피로를 풀어주는 간이역으로 역할한 것이다. 10시 영업 마감은 그 시간에라도 집에 돌아가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 바라는 창업주의 마음이었다. 실향민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끼는 그였으니까. 그러다보니 술이 흥건히 취해 한 잔 더를 찾는 손님에게 빗자루질을 해대며 지하철표까지 쥐어주고 가라우하며 내쫓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란다.

 

만약 아버지가 10시 마감 원칙을 고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노가리골목은 생겨나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우리가 영업을 마감하니 다른 가게들이 들어서면서 남은 시간들을 채웠고, 너나 할 것 없이 노가리를 안주로 팔았죠. 노맥의 원조를 인정하니 주변 가게들도 노가리 가격을 우리와 같은 1,000원에 맞춰요. 함부로 올리지 못하는 거죠. 노가리 원가는 이미 1,000원을 넘어선 지 꽤 됐어요.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가능한 한 오랫동안 1,000원을 유지하고 싶어요.(웃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10평도 채 되지 않는 작은 가게를 운영하면서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은 적은 없었을까? 고집과 현실 간 괴리가 너무 크지 않나?’ 딸은 가게를 맡으면서 아버지, 그리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었다. 돌아오는 답은 하나였다.

소시민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장사꾼, 그거면 돼!’

 

그리고 딸도 아버지의 철학과 원칙을 이제는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30, 40대에 가게를 물려받았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거 같아요. 아버지의 원칙을 제대로 고수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요. 백년가게로 인정받았으니 오히려 제 안의 갈등도 정리되고, 어깨가 더 무거워졌어요. 앞으로 진짜 100년을 향해 가야만 한다는 책임이 생겼잖아요. 앞으로 30년을 제가 이어가고 다양한 경험을 쌓고 온 아들이 그 다음을 또 이어간다면 이 골목이 바뀌지 않는 한 을지오비베어는 한국의 현대사를 살아낸 진정한 백년가게가 되어 있지 않을까요?”

 

---------

을지오비베어 Tip_을지로 노맥축제, 생맥주 한 잔에 1000


매년 6월 여름이 시작되는 초입이면 열리는 노가리골목의 노맥축제. 2013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이틀간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진행되는데 평소 3,500~4,000원 선인 500cc 생맥주를 1,000원에 판다. 노가리는 원래 판매 가격대로 1,000. 수백 명의 인파가 몰리는 축제기간 을지오비베어의 맥주는 8~9시 정도면 다 팔리고 없다니 냉장숙성 맥주를 맛보고 싶다면 일찌감치 자리를 잡을 것.

----------

기본 정보

 

을지오비베어_생맥주, 노가리

· 창업연도 : 1980(창업주 강효근)

· 대표 : 강호신 (2)

· 주소 : 서울 중구 충무로912

· 전화번호 : 02-2264-1597

----------

[백년가게 우수사례] 청주 재건갈비 / Since 1981
[백년가게 우수사례] 서울 대림동 삼거리먼지막순대국 / Since 19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