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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가게 우수사례] 대전 신미당 / Since 1971
날짜 : 2020-02-18
작성자 : 관리자
조회 : 88

50년 장인이 만들어낸 명품, ‘위조 불가능한 고유의 도장’


“초등학교 시절, 10살 때부터 도장을 팠어요. 시골에 살았으니 마을 뒷산에 가 물푸레나무 뿌리를 캐 가지고 와서 우산살 등을 날카롭게 만들어 도장을 팠죠. 주변에 널린 모든 것들이 다 도장 재료가 됐어요. 하하.”


도장, 시계, 주얼리 세 가지 품목으로 변함없이 반백년을 이어온 신미당 송석환 대표(64). 그에게 도장 파기는 어린 시절 행복한 취미였다. 그래서인지 업력은 벌써 50년인데 그의 나이가 일흔이 되려면 족히 몇 년이 더 남았다. 열다섯의 어린 나이에 신미당을 설립했다는 얘기다. 


‘도장, 시계, 주얼리’, 지금은 이상하지만 70년대엔 모두가 그렇게 출발


사업자등록증 상 신미당의 개업연도는 77년이지만 실제로 사업을 시작한 건 71년부터란다. 70년대에는 길거리 구석진 곳에서 노점 형태로 도장을 파주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송 대표도 그들과 비슷한 출발을 했다. 그러다 성년이 돼 사업자등록증을 냈고, 1년 후 시계수리를, 그리고 또다시 1년 후 귀금속을 추가하면서 지금과 같은 모양새를 갖췄다. 당시 시계업에는 주로 장애를 가진 이들이 많았는데 송 대표는 손기술이 있으니 시계업도 추가했다. 귀금속은 소매보다는 도매를 주로 했다.

도장은 70년대에 이윤이 많은 사업이었다. 지금처럼 기계로 파는 게 아니었던지라 도장 파는 이들은 기술자로 인정받았고, 재료값이 얼마 되지 않으니 마진이 꽤 높았다.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는 도장 사업의 최대 호황기이기도 했다. 당시에는 초.중,고등학교 등을 졸업한 자녀들에게 졸업 기념 도장을 파주는 것도 크게 유행했다. 송 대표는 이미 10년 가까이 도장을 파왔기에 속도도 남들보다 빨랐다. 목도장 하나가 그의 손에 올라가면 1분 만에 누군가의 도장이 돼 나왔다. 일이 너무 많아 밤을 새야 하는 날도 적지 않았단다. 지금의 신미당 건물도 이때 토지를 매입해 신축한 것이다. 하지만 몇 년간의 호황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80년대 초 도장 파는 컴퓨터기계가 등장한 때문이다. 


컴퓨터기계가 등장하자 송 대표는 특화된 도장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가 만드는 명품 인장에 사용하는 벼락맞은 대추나무를 알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벼락맞은 대추나무는 예부터 매우 길하다 해서 인장 소재로 많이 사용했어요. 대추나무는 전통적으로 네 가지 이득이 있다고들 해요. 첫째, 나무를 심은 그해에 열매가 열려 바로 돈이 된다, 둘째, 한 그루에 많은 열매가 열린다, 셋째, 나무재질이 단단해 인장재료, 홍두깨, 절구공이 등으로 쓰이며 인간 생활에 도움을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귀신을 쫓는다.”


당시 송 대표는 사회복지법인인 승가원에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만든 도장 10만개를 후원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좋은 재료를 어떻게 더 특별하게 만들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대추나무를 깎아 시중에 나오는 규격화된 도장재료와 달리 일정하지 않은 규격으로 도장 재료를 만들고 외형에 ‘만사형통’이라는 이름도 붙였다. 도장재료의 디자인은 불교에서 악귀와 삿된 기운을 물리친다는 ‘금강저’를 본떠 만들었다. 도장의 규격부터 다르니 송 대표의 ‘만사형통’ 도장은 인장 위조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 ‘만사형통 인장조각’은 지난 2012년 상표등록도 마쳤다. 여기 더해 송 대표는 실용성도 추가했다. 도장 뚜껑이 잘 빠지도록 뚜껑 안에 스테인리스 스프링을 장착한 것이다. 


고급 인장재료로 만든 인장 조각, 명품도장 1년에 200여개 제작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짧은 시간의 인터뷰임에도 목도장 손님, 시계수리 손님, 주얼리 손님이 각각 한 명씩 다녀갔다. 

도장 30%, 시계 30%, 주얼리 40% 정도로 각 품목의 매출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한다더니 과연 송 대표의 말이 틀리지 않나보다. 


“과거에는 세 가지 품목의 소비층이 다양해 매출 비중을 따지면 주얼리가 가장 높았어요. 신미당이 문을 열 때만 해도 귀금속은 지금처럼 독자 영역이 아니었죠. 주얼리 도매를 했으니 매출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귀금속은 완전히 별개의 영역이 됐고, 도장은 열쇠집에서 같이 하잖아요? 그런데 우리 집은 처음 품목을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하고 있지요. 물론 일하는 건 조금 바뀌었지만요. 주얼리는 더 이상 도매는 안 하고, 시계는 판매가 20%, 수리가 80% 정도 돼요.”


스마트폰 등이 등장하면서 시계산업도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째깍째깍 기계 시계 초침 소리의 매력에 빠진 이들은 여전히 스위스 고급시계 등 명품시계에 눈길을 준다. 명품 브랜드들은 본사에 AS를 맡기면 수리가 가능하지만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기에 신미당으로 들고 오는 이들이 많다. 젊은 층은 인터넷으로 구매한 시계 등의 수리가 필요할 때 신미당을 찾는다. 오랜 시간 쌓아온 기술력이 있으니 송 대표가 고치지 못하는 시계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단다.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시계부품까지 만들어 썼기에 웬만한 건 수리가 가능하지만 비슷한 부품조차 구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송 대표도 어쩔 수 없다고. 


전국적으로도 신미당처럼 도장, 시계, 주얼리를 한 곳에서 취급하는 곳은 찾기 어려울 듯싶다. 신미당 근처에서도 6곳 정도가 비슷한 사업을 했는데 지금은 시계와 주얼리만 취급하는 2개 점포만 남아있고, 도장은 열쇠를 겸하는 점포가 3곳 정도 있다고. 

반세기를 이어온 전통이니 가족이 3대에 걸쳐 꾸준히 발걸음을 하는 도장 고객이 200~300여명에 달한다. 송 대표가 시계수리와 더불어 어디에도 없는 ‘인장’으로 도장을 고급화한 덕분이다. 


송 대표는 백년가게로 선정된 이후 소상공인 대상의 교육과 컨설팅을 받으며 또다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간판을 보수하고 홈페이지를 구축한데 이어 유투브 채널을 열어볼까 조심스럽게 고민 중이라고. 몇 차례 더 유투브 관련 교육을 받으면 충분히 크리에이터로 나설 수 있을 것 같단다. 

‘도장 기계의 등장과 이후 사인문화의 정착으로 도장 산업이 쇠퇴된 데 이어 시계를 안 차는 시대까지 도래했을 때는 정말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는 송 대표. 하지만 올해 서른둘의 막내딸이 2~3년 후부터 본격적으로 일을 배울 예정이라니 이후의 반세기는 인터넷, 모바일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모습으로 이어가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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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당 Tip_어디에도 없는 나만의 도장


손으로 조각한 도장은 위조 자체가 불가능하지만 신미당은 여기 더해 하나가 더 있다. 벼락맞은 대추나무로 직접 도장재료를 제작하니 원하는 사이즈로 무작위로 만들 수 있고, 송 대표가 개발한 특별한 서체로 이름에 맞게 다양한 모습의 도장을 팔 수 있다. 1년에 200여개 정도를 만드는 송 대표의 명품 도장은 파는 데만 2~3시간이 소요된다. 나만의 명품 도장을 원한다면 신미당으로 발걸음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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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신미당_장인의 손기술 ‘도장, 시계, 주얼리’

· 창업연도 : 1971년 

· 대표 : 송석환

· 일하는 사람 : 송석환 대표 1인

· 주소 : 대전 유성구 원내로 25

· 전화 : 042-543-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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