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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가게 우수사례] 강원 속초 함흥냉면옥 / Since 1961
날짜 : 2020-02-18
작성자 : 관리자
조회 : 79

“국내 최초 명태회냉면, 아버님의 지역사랑, 제가 이어야죠!”


1951년, 전쟁을 피해 부산까지 피난을 떠났던 함경도 사람들은 2년 1개월간 UN과 북한의 휴전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속초에 머물며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사는 곳은 바뀌었지만 속초에 남겨진 이들은 어떻게든 살아내야 했다. 함흥냉면옥 창업주 故 이섭봉 씨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전란으로 어수선하던 1951년, 작은 어촌 마을이던 속초에 고향식 함흥냉면으로 식당을 열었다. 어수선하던 시기이니 그의 식당은 첫 몇 년간 고전을 면치 못했지만 당분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실향민들은 그의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함흥냉면옥 외에도 함흥냉면집은 1~2곳 정도가 더 있었지만 풍부하던 어족 자원 덕분에 돈이 넘쳐났기에 세 집 모두 장사가 잘 됐다. 고깃배를 타는 이들은 함흥냉면옥에서 반주 한 잔 곁들인 저녁식사를 하고, 아침이면 또 해장을 위해 식당을 찾았다. 물가자미회무침을 고명으로 올린 비빔냉면이지만 함흥냉면에는 기본적으로 육수가 한 주전자씩 제공되기에 냉면에 육수를 부어 후루룩 마시면 행복한 해장 음식이 됐다. 


갑작스런 부친 작고로 양념비법도 몰랐지만 스스로 터득


하지만 20여년쯤 지나자 지나친 남획으로 풍부하던 어족 자원은 급감하기 시작했다. 물가자미가 자취를 감추자 이봉섭 창업주는 냉면의 고명을 쥐치로 바꿨다. 그러나 쥐치도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 날 주위를 둘러보니 명태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명태는 시쳇말로 ‘개도 안 물어갈 정도’로 흔한 생선이었다. 명태 살을 발라 회무침으로 무쳐보니 비린내도 적고 부드러운 맛이 괜찮았다. 뼈째 썰어 고소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인 가자미와는 다른 식감이었지만 가자미를 대체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980년, 국내 최초의 명태회냉면은 그렇게 탄생했다. 

함흥냉면옥이 명태회냉면으로 인기를 끌자 당시 50여개에 달하던 다른 함흥냉면집들도 앞다퉈 명태를 고명으로 올렸다. 그래도 원조집인지라 함흥냉면옥은 큰 부침 없이 장사를 이어갔다. 


처음으로 위기가 찾아온 건 92년이었다. 갑작스런 화재로 창업주가 작고한 것이다. 창업주의 아내도 식당에서 일을 거들었지만 주방은 남편의 몫이었기에 냉면 만드는 비법을 정확히 알진 못했다. 급한 대로 주방장을 고용하고, 군대를 갓 제대한 아들 문규 씨를 불러들여 식당운영을 이어갔다. 문규 씨의 나이는 당시 스물넷. 주방장 밑에서 보조로 일하며, 냉면 반죽부터 배웠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몰라도 주방장은 몇 년이 지나도록 양념과 육수 만드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문규 씨는 주방장이 퇴근한 후 식재료 창고의 재료 분량을 체크하기 시작했다. 재료 배합비율을 안 가르쳐주니 고춧가루 등 식재료가 얼마나 줄었는지 파악해 양념배합을 역추산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스스로 양념비법을 터득하기를 2년여. 수시로 무단결근을 하던 주방장이 어느 날 또다시 무단결근을 하자 그 길로 해고하고, 문규 씨가 직접 음식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확한 비율로 배운 게 아닌지라 부친의 음식 맛과 달랐다.


문규 씨(51)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손님들이 ‘옛날 맛’이 안 난다고 늘 말씀하셨죠. 양념 비법이라는 게 몇 개월 만에 알아지는 게 아니니 포기하고 식당을 접을까, 새로 주방장을 고용할까 고민이 많았어요. 하지만 그냥 밀어붙였죠. 꾸준히 노력하다 보면 그 맛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어요. 그러면서 제 손맛이 만들어졌고, 제 음식에 익숙해지신 분들이 또 찾아오시더라고요.” 


다소 부족하더라도 아들이 이어받은 식당을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준 건 그들 대부분이 30년 이상 부친과 함께해온 실향민들이라는 점도 컸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아들 승계 후 ‘음식 맛’ 하나만 남기고 낡은 운영방식 모두 바꿔 


함흥냉면옥 1층과 2층 벽에는 창업주 이섭봉 씨의 흔적들이 걸려있다. 


‘도 자전차경기발전에 헌신적인 노력과 우수선수 육성에 지대한 공로가 있었으므로 이 공로장을 수여함’_공로장 (1962년)

‘이분은 자전차 선수의 지도육성에 정진하여 향토문화 향상에 이바지한 공적이 현저하므로 강원도 문화상 조례 제2조의 규정에 의하여 이에 상장과 상금을 수여함’_상장(1963년)

‘설악산도로포장준공기념 제1회 전국싸이클경기대회’_1971년


체육인 출신인 창업주는 속초에서도 체육을 활성화하고 싶었다. 당시는 속초뿐 아니라 강원도 전체가 스포츠의 불모지였다. 식당으로 번 돈을 모두 털어 사이클과 육상 분야 후진 양성을  지원했고, 그의 후원 덕분에 국가대표 선수도 배출되었다. 속초시청 소속 사이클 선수단도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경제사정이 여의치 않은 체육 꿈나무들에겐 숙식을 제공하며 훈련에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했다. 


부친이 지역에 뿌린 결실과 부친의 손맛을 찾기 위한 문규 씨의 노력, 그리고 잇단 방송 프로그램 노출로 명태회냉면이 전국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식당 운영은 다시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러자 문규 씨는 4년여 간 속초를 떠났다. 혈기왕성한 나이이니 다른 일을 해보고 싶기도 했지만 식당 운영을 둘러싸고 어머니와의 갈등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의 빈자리가 컸는지 식당은 또다시 하향세를 걷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요청에 못 이겨 속초로 돌아왔지만 이미 꺾인 하향세를 돌리는 데는 또다시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문규 씨는 지저분해진 식당을 쓸고 닦고 정리하며 직원 채용, 급여 체계, 청결, 위생 등 식당 운영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나갔다. 어머니 세대의 낡은 방식으로는 함흥냉면옥을 계속 이어갈 수 없을 거라는 위기감이었다. 그리고 2014년, 늘 옮겨 다녀야 했던 임대점포 생활을 정리하고, 지금의 자리에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죠.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명태회냉면을 처음 개발한 집, 아버님이 이 지역에 쏟았던 헌신,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그만둘 수가 없더라고요.”

‘미소는 능률의 원천이다’는 부친의 한 마디를 늘 가슴에 새기며, 자신도 작지만 지역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문규 씨. “앞으로 30년 정도 제가 함흥냉면옥을 이어가고, 이후 30년을 제 아들이 이어준다면 아버지께도 많이 부끄럽지는 않을 것 같아요”라는 문규 씨의 말에 진솔함이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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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흥냉면옥 Tip_양념장, 식초, 겨자, 설탕 넣으면 전혀 새로운 맛!


비빔냉면에 양념장을 더 넣고 설탕까지 넣으라고? 뭔가 안 맞는 조합 같지만 주인장의 주문대로 양념장, 식초, 겨자, 설탕을 골고루 넣어본다. 거기에 육수까지 자작자작 얹으니 새콤달콤 새로운 맛이다. 이 맛을 올곧이 느끼려면 냉면이 처음 나왔을 때 있는 그대로의 맛을 먼저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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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함흥냉면옥_실향민 향수 달래는 원조 ‘함흥냉면’

· 창업연도 : 1951년 

· 대표 : 이문규(2대/창업주 故 이섭봉)

· 일하는 사람 : 정직원 9명 

· 주소 : 강원 속초시 청초호반로 299

· 전화 : 033-633-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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