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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가게 우수사례] 인천 신포순대 / Since 1978
날짜 : 2020-02-18
작성자 : 관리자
조회 : 257
첨부파일 :

“한국의 소시지, 신포순대는 그냥 순대가 아닙니다!”


“거의 모든 재료가 다 순대가 될 수 있어요. 인삼을 넣으면 인삼순대가 되고, 해물을 넣으면 해물순대가 되고... 그동안 연구하면서 김치, 피자 등등 안 넣어본 게 없어요. 그 중에서 소비자들 입맛에 가장 잘 맞는 게 고추순대하고 카레순대더군요. 그래서 상품화가 됐죠. 보세요~~ 이렇게 한 번 꼬아주면 소시지잖아요? 여러 번 꼬아주면 또 이렇게 재미있는 모양이 되고..”


찹쌀과 당면, 온갖 야채로 버무려진 속 재료가 준비해둔 소창 속으로 쏙쏙 들어가니 두툼한 찹쌀야채순대가 한 덩이씩 뚝딱. 한번 꼬아주고, 한번 더 꼬아주니 신포순대만의 한국 소시지 ‘순대’가 탄생한다. 

방금 만들어진 신포순대의 대표 메뉴인 찹쌀야채순대다. 속 재료의 60%가 찹쌀이라더니 과연 쫄깃쫄깃 입에 착착 감긴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맛봐도 찰기가 가득해 부드럽게 씹힌다. 


70~80년대 인천 시민들의 애환을 달랜 음식


서인성 대표(50)가 매일 아침 8시부터 오전 내내 만드는 순대는 약 80kg, 200인분 분량이다. 신포순대 건물 지하 ‘관계자외 출입금지’ 구역이 그의 순대작업장이다. 10여 년 전, 순대공장에서 사용하는 대형 제조설비를 들여와 소규모 작업장으로 만들었다.

인성 씨가 부모님을 도와 신포순대에서 일하기 시작한 건 90년대 중반부터. 캐나다에서 컴퓨터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했지만 어머니가 정신적인 충격으로 갑자기 일손을 놓아버리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1978년 신포시장에 순댓집을 열어 20여 년간 손수 순대를 만들어온 어머니가 갑자기 장사를 접겠다고 하니 점포 운영은 아버지와 인성 씨의 몫이 됐다. 처음 오픈할 때부터 늘 손님이 많았던 데다 찹쌀순대가 몇 차례 방송 프로그램에도 소개되면서 직원도 4~5명을 둘 정도로 규모가 꽤 있었지만 어머니가 순대를 만들지 않으니 매출은 하루 50만~60만원 정도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오픈 당시 인천에는 없던 음식인 순대를 서울에서 사와 시장에서 팔다가 사오는 것만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자 순대 만드는 법을 배워 지금까지 일궈온 어머니의 역사를 그냥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부자가 어찌어찌 순대를 만들어 점포를 운영했지만 어머니의 맛과는 차이가 있었던지 떨어져 나간 손님들은 쉽게 되돌아오지 않았다. 몇 개월을 그렇게 보내다 겨우겨우 어머니를 설득한 끝에 점포가 정상화됐다. 


어머니가 돌아오자 인성 씨는 새로운 메뉴 개발에 나섰다. ‘신포순대’는 분식점의 순대가 아니라 ‘특화된 음식’이라는 자부심이 있었기에 다양한 식재료로 꾸준히 테스트를 해봤다. 캐나다 유학 시절 맛봤던 음식들을 떠올리며 고추, 카레, 김치, 피자, 인삼, 해물 등 순대에 활용가능한 모든 재료를 넣어 새로운 맛을 만들어냈다. 해물순대는 맛은 최고였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물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나는 등 식재료의 특성에 따라 상품화하기 곤란한 단점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게 연구한 끝에 찾아낸 신 메뉴가 고추순대와 카레순대다.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하면서도 대중적인 맛이었다. 찹쌀 야채순대, 찹쌀 고추순대, 찹쌀 카레순대, 당면 야채순대 등 네 종류의 순대로 구성된 지금의 모둠순대가 이렇게 세상에 선보였다.


다양한 재료의 신포순대는 방송 프로그램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먹방이 많지 않았기에 방송에 한두 번 노출되자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연락이 왔고, 그러면서 인천뿐 아니라 타 지역에서도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인성 씨도 자신감이 커져 갔다. 그의 나이 30대 후반이었다. 내친 김에 점포를 확장하기로 하고 3억~4억여 원을 투자해 인천 연수동에 330.57㎡(약 100평) 규모의 분점을 열었다. 첫 6개월 정도는 예상대로 성과가 꽤 괜찮았다. 하지만 그때뿐 6개월여가 지나자 매출이 생각만큼 오르지 않았다. 


“손님은 늘 많은데 매출이 계속 답보상태를 유지하더라구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상승곡선을 그려줘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죠. 곰곰이 생각해보니 매장이 2층이라 포장 손님이 없는 게 원인이더라구요. 순대라는 상품의 특성을 간과한 거죠. 시장에서는 매장에서 먹는 손님과 포장해가는 손님이 엇비슷한 수준이거든요. 결국 한 3년 정도 매장을 유지하다 문을 닫았어요.(웃음)”


‘브랜드 고급화’로 온라인 쇼핑몰, 가맹점 사업도 준비 중


하지만 그 3년의 시간은 인성 씨가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고, 그 시간을 디딤돌 삼아 ‘백년가게’로 선정된 지금 그는 또 다른 미래를 꿈꾼다.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손님을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직접이든 아니면 입점 형태든 온라인 쇼핑몰을 오픈하고, 가맹사업도 시작할 계획이다. 

이전에도 가맹점 문의가 꽤 있었지만 찾아온 이들에게 순대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면 모두들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뒤돌아서기 일쑤였단다. 그만큼 음식 자체를 만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신포순대가 순대를 직접 만들어 공급해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를 위한 준비도 이미 마쳤다. 프랜차이즈든 온라인 쇼핑몰이든 판로가 확대되면 인성 씨 혼자 순대를 만들 수는 없기에 OEM으로 위탁 생산할 계획이다. OEM 업체도 이미 선정해둔 상태다. 매장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해 판매되는 순대는 급랭 방식으로 공급되기에 비릿함과 신선도가 문제가 됐던 해물순대도 충분히 공급이 가능해진다. 그동안 연구했던 특화 순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소비자와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순대를 분식메뉴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신포순대는 다르거든요. 순대라는 이름의 음식이에요. 그걸 알리려면 고급 순대로 브랜드화하는 것도 필요하죠. 온라인과 프랜차이즈로 외연을 확대하면서 브랜드 고급화 방안도 고민해 보려구요.”

소시지처럼 순대를 꼬아서 파는 것도 인성 씨의 나름의 특화 전략이었다. 택배 물량이 많은 건 아니지만 꼬아진 순대를 보내면 필요한 만큼만 먹고 남은 순대는 냉장고에 보관했다 나중에 먹을 수 있으니 소비자가 구입할 때도 편리하다는 것. 

순대를 만들다 소시지는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해 독학으로 만들어봤다는 인성 씨. 가업을 이은 후 혹독한 시행착오도 거쳤기에 이번에는 조심스레 돌다리를 두드리는 중이다. 

그가 ‘신포순대는 순대가 아니라 OOO다’의 답을 찾아낸다면 신포순대는 신포시장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 중 하나가 아니라 지금껏 지나온 40년 세월을 디딤돌 삼아 글로벌 시장에서도 한국의 특별한 토속 음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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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포순대 Tip_프라이팬에 살짝 구우면 처음 보는 새로운 맛!


찹쌀 함량이 높은 신포순대는 다른 방식으로 먹어보면 훨씬 더 감칠맛이 살아난다. 프라이팬에 기름을 조금 두르고 순대를 살짝 굽듯이 익혀보라. 껍질이 누룽지처럼 바삭바삭해져 삶은 순대와는 다른 식감이 나고, 차진 맛도 더 도드라진다. 캠핑지에서 삼겹살, 소시지만 구울 게 아니라 신포순대의 찹쌀 순대를 함께 구워보라. 순대의 신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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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신포순대_쫄깃함 가득 찹쌀순대

· 창업연도 : 1978년 

· 대표 : 서인성 (2대/창업주 서윤수)

· 일하는 사람 : 서인성 대표, 정직원 2명, 시간제 1~3명

· 주소 : 인천 중구 제물량로166번길 33

· 전화 : 032-773-5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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