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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가게 우수사례] 대전 명랑식당 / Since 1975
날짜 : 2020-02-18
작성자 : 관리자
조회 :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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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라상에 오른 궁중 육개장’, 단일 메뉴로 이어온 반세기


“우리 집 육개장은 임금님 수라상에 올라가는 육개장이야. 식당을 시작하고 2년 넘게 퍼주기만 하다 보니 돈이 모이지 않잖아? 어느 날 문득 어릴 때 먹던 어머님의 육개장이 생각났지. 늘 막내딸인 나를 아파하셨는데 그 어머님의 육개장이 퍼뜩 떠오른 거야. 그때부터 육개장 하나만 만들었어. ‘고사리, 숙주, 무 같은 건 왜 안 넣어요?’ 하고 물으니까 ‘그런 재료는 수라상에 못 올라가는 것들이다’고 하셨거든.” 

명랑식당 창업주 석기숙 여사(87)가 일명 파개장(파육개장)을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명랑식당의 육개장에 파가 많이 들어가 ‘파개장’이라고 불린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가 궁중 육개장이기 때문이라니.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보신 음식으로 개장국을 첫째로 꼽지만 안 먹는 사람이 많아 개고기 대신 쇠고기로 만든 탕이 육개장이다. 국을 끓이려면 먼저 쇠고기의 양지머리 부위를 충분히 삶아서 결대로 찢고 그 국물에 데친 파를 듬뿍 넣고,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넣어 맵고 감칠맛 나게 끓인다. 궁중의 육개장은 소의 양과 곱창도 한데 넣고 끓인다.”_‘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음식 백가지’_2005 한복진 저 (현암사)


자료를 찾아보니 석 여사의 얘기가 틀리지 않다. 

“우리 이모님 할머니의 시누님이 임금님의 후궁이셨어. 그래서 집에서도 궁중에서 끓이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육개장을 끓였지. 그걸 가족들이 먹다보니 그 손맛이 계속 이어져온 거고, 내 어머니도 그 육개장을 우리한테 만들어줬지.”


육개장 한 그릇이 밥을 말아 넣을 공간 하나 없이 큼지막한 파와 양지고기로 가득하다. 맛이 궁금해 국물부터 한 수저 떠본다. 파의 매운 맛은 온데 간데 없고, 파 특유의 향이 사골국물, 양지고기의 고기 향을 적당히 잡아 자연스런 단맛과 어우러지며 감칠맛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진득한 바디감을 드러내는 육개장이 또 있을까.


“손님은 하루에 딱 열 테이블만 받자”


부잣집 막내딸로 태어난 석 여사가 식당을 시작하게 된 건 남편의 연이은 사업 실패 때문이었다.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석 여사에게 지인들은 ‘청주에는 괜찮은 식당이 없으니 식당을 한 번 해봐라’고 조언했다. 기회가 될 때마다 어머니에게 배운 궁중요리 솜씨를 살려 음식을 대접했는데 손맛이 좋다며 늘 칭찬을 아끼지 않던 지인들이었다. 식당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던 시절, 집안의 반대가 심했지만 ‘1년만 믿어달라’며 청주에서 작은 규모로 식당을 열었다. 첫 해에는 설렁탕, 전골, 불고기 등 다양한 음식을 모두 취급했는데 양을 가늠하지 않고 지나치게 퍼주다 보니 남는 게 별로 없었다. 손이 큰 성격이라 1인분에 300g 가까이 고기를 내주다가 200g 정도로 저울에 재 손님한테 내니 양이 적어 늘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 문든 어머니의 육개장이 떠올랐다. 다른 집 육개장과는 다르니 차별화도 가능한 메뉴였다. 육개장이 많이 알려지지 않던 시절이라 처음에는 육개장과 파전 두 가지 메뉴를 내놨다. 처음 맛본 이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대전으로 식당을 이전한 후 뜨거운 국물 요리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입소문도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려진 육개장은 당시에는 별미라기보다 인근 직장인들의 속을 달래주는 든든한 한 끼 식사였다. 육개장에 들어가는 한 번 데쳐낸 파와 결대로 찢어놓은 양지고기도 추가를 요청하면 듬뿍듬뿍 퍼주었다. 특상품의 파가 아니면 쓴 맛이 올라오기에 가격이 비싸더라도 석 여사는 최고의 파를 고집했다. 장사가 잘 될 때는 석 여사 혼자 운영하면서 하루에 1000그릇 이상을 팔아치운 적도 있단다. 종업원도 한때 15명까지 늘었다. 하지만 석 여사는 식당의 규모가 커지는 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대전역 근처에서 운영하던 큰 식당을 정리하고 지금의 인쇄소 골목으로 이전해온 이유다.

 

“대전역 앞에서 장사를 할 때는 통금이 있던 시절(야간통행금지는 1982년 1월에 해제)인데 통금 해제 시간인 새벽 4시부터 문을 열어서 시내버스 막차가 끝나는 밤 11시까지 영업을 했지. 1~2시간 정도 집에 가서 자고 다시 나와 새벽 4시부터 또 일하고.”

몇 년간을 그렇게 생활하면 힘들지 않았냐고 묻자 맛있게 먹는 사람들을 보는 일이 즐거워 힘든 기억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규모를 줄여 점포를 이전하면서 손님은 하루 열 테이블만 받기로 했다. 작은 규모였지만 나이가 일흔을 넘어서자 건강에도 적신호가 켜져 아들이 가업을 이어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그만두고 잠시 내려와 일을 도왔지만 한 달여 만에 돌아가 버리기를 몇 차례. 결국 서울에서의 일이 생각대로 되지 않아 다시 어머니 품으로 돌아왔지만 그러고 나서도 가업을 잇기로 결심하기까지 3년의 시간이 더 걸렸단다. 


“명랑식당은 앞으로도 이 작은 점포로 이곳에 있을 겁니다”


그 아들이 지금은 어머니의 국자를 물려받아 주방을 맡고 있다. 이미 7년째다. 

모든 레시피는 어머니의 눈대중과 입맛으로 가늠하기에 육개장의 국자는 명랑식당의 비법이란다. 육개장 국자가 저울이자 계량스푼이다. 

아들의 아들도 현재 임용고시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의 교사지만 명랑식당의 3대를 이어갈 마음의 준비를 벌써 끝내놓은 상태란다. 다른 직업을 통해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고 나서 아버지가 힘들 때쯤이 되면 자신이 할머니의 노포를 이어가겠다는 것. 


“뜨끈한 국물이 생각날 때 이 집에 와요. 다른 집 육개장에 비해 국물에 깊은 맛이 있고, 음식도 깔끔하거든요.”_남OO씨(인근 인쇄소 근무)

“명랑식당 파개장은 대전의 향토음식이에요. 근처에 살다 다른 곳으로 이사 갔는데 손님이 오시면 자주 모시고 오는 향토음식점 중 하나예요.”_정OO씨(타 지역으로 직장을 옮긴 단골 손님).


오전 11시가 되기도 전부터 명랑식당의 테이블은 하나 둘 자리가 차기 시작한다. 옛날 건물이라 천정이 낮아 2층으로 올릴 생각도 해봤지만 ‘명랑식당은 지금 이 모습 그대로가 추억’이라는 손님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작지만 앞으로도 지금의 모습을 고수할 예정이다. 

지금껏 지내온 반세기의 세월, 앞으로 반백년 후에도 이름처럼 활기 가득한 명랑식당의 지금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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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식당 Tip_포장 육개장은 얼렸다가 드세요!


둘째 아들이 운영하는 포장 전문인 명랑식당 월평점. 포장 육개장은 바로 먹기보다는 포장상태로 곧바로 냉동해 한 차례 얼렸다가 해동한 후 끓이는 게 가장 맛이 좋다. 한 번 데친 파를 바로 넣고 끓인 육개장은 단 맛이 강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경과하면 파의 단 맛이 조금씩 빠지면서 새콤한 맛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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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명랑식당_깊은 국물 맛 ‘파육개장’

· 창업연도 : 1975년 

· 대표 : 홍성표 (2대/창업주 석기숙)

· 일하는 사람 : 2대 대표 부부 + 시간제 3명

· 주소 : 대전시 동구 태전로 56-20

· 전화 : 042-623-5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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