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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가게 우수사례] 서울 동양직물 / Since 1980
날짜 : 2019-10-22
작성자 : 관리자
조회 :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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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다_한 발 빠른 전략이 앞서가는 비결

 

1970년대 종로 광장시장은 국내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원단 전문 시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원단을 구입하러 상인들이 몰려왔고, 시장 내 양복 원단 점포만 해도 200여곳에 달했다. 당시 자영업을 하려는 이들에게 양복지 원단은 최고의 사업이었고, 수입차에 운전기사까지 고용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부를 가져다 주었다.

스물 한 살이던 동양직물 김기준 대표도 자연스레 돈이 몰리는 곳을 찾아 광장시장으로 왔다. 양복지 원단을 판매하던 점포가 그의 첫 직장이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의 김 대표는 다른 이들과는 많이 달랐다.

 

주인의식 갖고 일하니 10년 만에 내 점포로 창업

 

회사 일이 곧 내 일이라는 생각으로 일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옷에 관심도 많았기 때문에 일 자체가 즐거웠죠.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어요. 그러면서 회사도 함께 성장했고요. 실제로 매출이 향상되는데 도움이 되었으니까요. 4년차 이후부터는 사장님도 저를 인정하기 시작했죠. 더불어 다양한 거래처의 많은 사람들과 좋은 인맥도 쌓을 수 있었고요.”

 

하지만 직장생활 10년차 정도가 되자 김 대표는 독립에 뜻을 두었다. 워낙 강한 주인의식을 갖고 일했기에 직원으로 일하면서도 경영에 깊이 관여했던 게 독립의 든든한 밑바탕이 되어주었다.

첫 두 해 동안은 독립을 만류하는 사장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동업의 형태를 유지했으나 2년이 지나고 부터는 완전한 홀로서기를 시작했다. 맞춤 양복이 대세이던 시대였으니 창업 후 10년 정도는 순조로운 성장을 이어갔다.

그러나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시장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이 기성복을 앞세워 양복 시장에 진출한 것이다. 양복지 원단 시장은 조금씩 설자리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언젠가 닥칠 어려움에 대비해 비장의 카드 하나를 숨겨두었다. 당시 남자라면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었던 남성용 한복 두루마기 원단이었다. 두루마기는 겨울용이라 대부분 두꺼운 원단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옷 맵시는 살지 않고 관리도 쉽지 않았다. 옷을 짓는 이들도 원단 다루기를 까다로워했다.

김 대표는 이즈음 보온성과 착용 편리성을 높인 두루마기 원단을 출시했다. 물론 갑작스레 등장한 아이템은 아니었다.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두루마기 원단은 이미 어느 정도 개발해둔 상태였어요. 단지 회사가 면직물을 주로 취급하다보니 규모가 크지 않았을 뿐이지요. 그 원단을 조금 더 정교하게 손봐 새롭게 선보인 것이지요. 굴지의 대기업인 제일모직과 공동으로 사군자라는 상표도 만들었고요.”

김 대표의 예상대로 두루마기 원단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그렇게 10여년 가까이 두루마기 원단은 동양직물의 효자 아이템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10여년이 지나자 시장은 또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패션 트렌드가 바뀌면서 실크가 양복지를 밀어내고 두루마기 원단 시장을장악한 것이다. 이때 잠시 김 대표도 실크 원단을 취급하긴 했지만 양복지와는 특징이나 성격이 달라 얼마 지나지 않아 과감히 두루마기 원단 사업을 정리했다.

 

체계 갖춘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법인 전환 추진 중

 

두 번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김 대표는 승복지로 눈을 돌렸다. 직장생활 2년째이던 1972년 어느 날, 노승이 찾아와 승복을 짓겠다며 원단을 구입해 갔는데 며칠 후 품질에 불만을 토로하며 환불을 받으러 온 적이 있었다. 지금처럼 환불 문화가 정착되지도 않았고, 김 대표도 젊었기에 몇 번의 실갱이가 오갔지만 결국엔 원단 값을 환불해 주었다. 하지만 스님이 남기고 간 말 한 마디는 오래도록 그의 머릿 속 한켠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좋은 물건 한 번 만들어 보는 게 어떻겠나? 우리도 좋은 원단으로 승복을 만들어 입으면 좋지 않겠나?”

그 작은 기억은 수십 년 후 김 대표에게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한복 두루마기 시장이 침체기로 접어들기 시작할 즈음부터 부산의 원단 기술자와 협력해 승복지 개발에 나선 것이다. 물론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승복지 원단에서 가장 중요한 건 색상이에요. 붉은 빛이나 푸른 빛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회색을 구현해야 하거든요. 회색이 가장 구현하기 어려운 색이란 걸 그 때 처음 알게 됐지요. 지금이야 염료도 모두 데이터화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데이터가 같은 색상으로 발현되는 건 아니에요. 원단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거든요. 90% 정도는 데이터 그대로 색상이 구현되지만 10% 정도는 여전히 예민한 부분이지요.”

 

승복지 개발을 완료하고 전국 사찰의 주소를 얻기 위해 조계사의 문을 두드렸지만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전국사찰총람이라는 책자가 김 대표의 손에 들어왔다. 책자를 토대로 정성스런 편지와 함께 원단 샘플을 넣어 전국의 모든 사찰에 발송했다. 그리고 얼마 후 주문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면서 동시에 대기업과도 협력해 승복지 원단을 골덴텍스 파라밀타라는 브랜드로 승화시켰다.

이후 승복지뿐 아니라 카톨릭, 기독교 등 다른 종교로도 사업을 확장했고, 지금은 다양한 종교복지를 다룰 정도로 성장했다.

 

동양직물은 현재 양복지와 종교복지를 5:5 정도의 비중으로 판매하고 있다. 양복지의 경우 과거에 비하면 시장이 많이 축소됐지만 몇 년 전부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잡은 브랜드 맞춤복 시장이 대안이 되어주고 있다. 맞춤복은 현재 전체 양복시장의 10%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입지가 강화되었다.

이처럼 새롭게 부상하는 시장에 대한 영업과 마케팅은 2대를 이어갈 아들이 맡고 있다. 영국에서 스포츠경영을 전공하고 귀국해 직장생활을 하던 아들을 3년 전부터 동반자로 끌어들인 것이다.

아들이 합류하면서 김 대표는 동양직물도 한 단계 도약을 꿈꾸고 있다. 전통시장 내 작은 점포가 아니라 법인으로 전환해 사업을 본격화한다는 계획이다.

더불어 종교인 밀집지역에 상품 전시가 가능한 매장을 오픈한다는 꿈도 실현하기 위해 다각도로 고민 중이다. 입지만 놓고 본다면 조계사 인근이 최적이지만 임대료가 너무 비싸 선뜻 들어갈 수가 없는 것. 접근성과 편리성을 중심에 두고 다양한 지역을 물색 중이란다.

 

늘 미래를 준비하고 있으면 언제 위기가 와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김 대표, 전통시장을 벗어나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할 동양직물이 100주년을 맞을 즈음에는 어떤 모습의 기업으로 변신해 있을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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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직물 Tip_늘 하는 일도 다른 방식으로 해보면 어떨까.


매일 하는 같은 일이라도 늘 다른 방식으로 하는 걸 고민해보면 좋을 것 같다. 좀 더 효율적인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다보면 더 나은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게 개인적인 지론이다. 실제로 해봤는데 성과가 좋지 않거나 비효율적이라면 원래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면서 하나씩 발전해 나가는 게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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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서울_동양직물

· 창업연도 : 1980

· 대표 : 김기준

· 주소 :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 88 1183

· 전화번호 : 02-2267-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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