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자료

게시판뷰
[백년가게 우수사례] 대구 백초당한약방 / Since 1975
날짜 : 2019-01-31
작성자 : 관리자
조회 : 772
첨부파일 :

약초 연구만 40여년, ‘모든 음식이 곧 약이고 약이 곧 음식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 할 게 뭐 있겠어요뭐든 해서 돈을 벌어야겠단 생각이었지요요즘이야 장래 희망사항도 꿈꾸고 하지만 그땐 밥벌이가 된다면 뭐든지 해야 했어요.”

1960모두가 힘들었던 시절이다. 17세의 소년 신전휘는 일을 찾아 경북 청송의 시골집을 떠났다이모부가 대구에서 한의원을 경영하고 있었기에 한약을 배우며 공부할 수 있을 거란 바람이었다그렇게 시작된 한약업이 그의 60년 인생 천직이 됐다.


한의원에서 일하면서 신전휘 박사(대구한의과대학교 명예 한의학박사)는 약초에 관심을 갖게 됐다어린 시절 먹을 게 변변치 않아 산으로 들로 친구들과 쏘다니며 캐던 식물들이 모두 약초나 다름없었으니 이름은 정확히 몰라도 눈에 익은 것들이 많았다이미 건조된 상태의 약재들을 늘 대하다 보니 약초들의 일생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하지만 당시에는 약초에 관한 전문서는 고사하고 참고할 만한 책도 존재하지 않았다.

1975년 한약사 자격증을 취득한 후 곧바로 대구약령시에 백초당한약방을 열었지만 약초 공부에 대한 그의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카메라를 구입해 전국의 산과 들을 찾아다니며 약초 사진을 찍었다그리고 4년여 후 1979년에 가서야 국내에서 처음으로 이창복 실무도감이란 이름의 식물도감이 발간됐다약초 교과서가 될 책인지라 신 박사는 뛸 듯이 기뻤지만 흑백 인쇄본이라 그동안 찍어온 사진과 비교하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다행히도 얼마 지나지 않아 컬러로 인쇄된 국내 식물도감이 발간돼 상당한 도움이 됐다.


백초당_1.png

 

그렇게 약초에 관한 자료들을 축적해 나가면서 신 박사는 대구약령시 보존위원회 총무직(후에 이사장)까지 맡았다보존위원회 관련 업무를 하려면 한약 의약사와 한약학의서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했다이를 위해 서울에 위치한 한독 의약박물관을 찾았는데 그동안 미처 보지 못했던 고서적들이 많았다고서적에도 관심을 갖게 된 계기다백초당한약방 한쪽은 고서적 전시관을 방불케 할 정도인데 신 박사가 이때부터 관심을 갖고 모으기 시작한 책들이란다.

 

그렇게 고서적을 수집하다 만난 책이 세종대왕이 왕명으로 편찬한 향약집성방이다. ‘향약집성방은 한글이 창제되기 직전세종대왕이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신토불이)을 강조해 의약제민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기 위해 편찬한 서적이다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즉 향약과 중국에서 생산되는 약재를 비교해 약성의 차이를 감별하는 목적도 있었기에 당시 명나라에서 유통되던 당약의 약재들도 구해와 효능과 약성을 비교해 실었다신 박사는 향약집성방’ 원본도 구입하고 싶었지만 전질은 임진왜란 때 이미 일본으로 건너간 상태라 몇 권의 낱 본들만 국내에서 구할 수 있었다. ‘향약집성방의 뒷부분에 소개된 일목요연한 약재들이 신 박사가 약초를 정리하는데 기초가 되어 주었다고서적에 실린 약재들을 현대에 맞게 체계적으로 정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백초당_2.png


고서적 속 약재 체계적으로 정리해보자 향약집성방 향약본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차를 몰고 산과 들로 약초 찾으러 다녔어요아침 9시에 출근을 해야 하니 멀리 가봐야 1시간 거리죠약초의 일생을 사진에 담아야 하니 같은 장소를 계절마다 최소 한 번씩은 가야 하잖아요향약집성방에는 중국의 약재도 적지 않게 실려 있으니 중국인도말레이시아 등 향약집성방에 소개된 약재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무조건 갔어요약초 사진을 더 가까이 찍으려면 마이크로렌즈가 필요하다고 해서 그걸 사러 일본에도 가고힘들지만 영롱한 아침이슬을 머금은 식물은 너무 아름답고 신비로워요사진으로 찍으면 실제로 보는 것보다 훨씬 덜하죠사진을 찍을 땐 단 한 컷만 제대로 건져도 성공이라 생각하고 찍었어요. (웃음)”

 

디지털카메라가 보급되기 전이니 사진을 찍어와 인화를 해 보관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그의 이런 수고로움은 17년이 지난 후에야 빛을 발했다. 2006년에 출간한 향약집성방의 향약본초향약을 다룬 책이지만 향약집성방에 수록된 모든 약재의 일생이 담겨 있으니 계절마다 성장하는 약초들을 찍어온 사진만도 수만 장에 달한다.

 

백초당_3.png


30여 년간 찍은 2만 3천 장 약초 사진 DB화 계획

 

1975년 백초당한약방의 문을 열면서 약초에 대해서만큼은 누가 물어도 곧바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하고약재 감별도 정확해야 한다는 신 박사의 신념은 향약집성방 향약본초에 이어 약초사진으로 보는 동의보감’ 등 몇 권의 소중한 서적 집필로 계속 이어졌다. 17년간의 노력이 한 권의 책으로 빛을 보자또다시 7년여의 시간을 들여 약초 사진으로 보는 동의보감을 세상에 선보였다이 책이 출간되고 나서야 국내에서도 비로소 식물의 일생을 다루는 서적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을 약초 연구에 바쳤기에 신 박사는 동의보감의 기본 사상인 식약동원(食藥同源)사상’, 즉 우리가 먹는 음식이 모두 약이라는 사상에 절대적으로 공감한다단지 한약이 하는 역할이 있다면 오장 육부의 약한 부분을 도와 음양의 균형을 맞춰주는 것이란다난임 부부들이 주로 백초당한약방을 찾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신 박사의 한약은 난임을 해결하는 어떤 특효약이 아니라 몸을 따뜻하게 만들어 임신이 용이하도록 만들어주는 보조제의 역할을 한다. ‘음양의 기운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

 

우리 한약방이 이번에 백년가게에 선정됐지만 과연 백년을 이어갈 수 있을지 나조차도 미지수에요대구약령시에 촘촘히 늘어선 200여개의 한약방을 다 합해도 동대구역에 들어선 신세계백화점에 못 미치는 규모입니다대구약령시의 역사가 계속 살아있으려면 우리 같은 가게가 더 오래 지속돼야 하는데...”

 

약령시의 규모가 날로 축소되는데 대해 신 박사는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현재 한약학과 교수를 하고 있는 아들이 백초당한약방을 이어갈 준비를 하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신 박사가 지난 30여 년간 찍어온 2만 3000장 800여종의 약초 사진을 데이터베이스화하려는 것도 약령시가 앞으로도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바라는 그의 간절한 마음 때문이다.

 

---------

백초당한약방 Tip_한약방 속 작은 박물관


주변 한약방에 비해 두 배 이상 규모가 큰 백초당한약방. 문을 열고 약방 안으로 들어서기 전 점포박물관이라 이름 붙인 작은 박물관이 눈길을 끈다. 1658년 개장한 대구약령시의 역사성과 전통성을 대표할 수 있는 점포들만이 운영할 수 있는 미니 한약박물관이다. 다양한 약재들과 더불어 신 박사가 집필한 약초 서적들도 전면을 장식하고 있으니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기본 정보

 

백초당한약방_약초전문가의 한약

· 창업연도 : 1975

· 대표 : 신전휘 (77)

· 주소 :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41538

· 전화번호 : 053-252-5505

----------

[백년가게 우수사례] 대구 청신한약방 / Since 1970
[백년가게 우수사례] 전주 탑외국어사 / Since 1987